.별다른 문화시설이 없는 농촌에서는 교회가 지역의 문화공동체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듣는 법을 배우고 책을 읽거나 친구와 만나며 성장한다. 교인들도 교감을 나누며 연대감을 확장한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옛 이야기.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고 아이 울음소리는 멈췄다. 지역이 서서히 소멸하는 가운데 교회의 존립도 어려워지고 있다.
2016년 3월 18일 ‘하나님의 사람을 양성하는 학교’라는 비전 아래 홍천 화촌면에 대안학교 ‘이끌라 318 기독사관학교’를 설립한 김정환 동홍천감리교회 담임목사는 지역 소멸문제에 관심이 많다. 교회를 중심으로 식당을 창업하는 등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 출신 청년들도 대안학교 지원을 위해 좋은 직장을 뒤로 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 ‘이끌라 318기독사관학교’ 학생들
성탄절을 앞두고 인터뷰를 가진 김 목사는 대안학교 설립 이유에 대해 “아빠, 야동이 뭐야”라고 물었던 당시 열두살 딸과의 대화를 불쑥 꺼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바른 가치관을 심어줘야겠다는 고민이 생겼다. 그후 “아빠가 학교를 세워줄게”라고 했던 약속이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김 목사는 “예전에는 학교가 도덕교육을 책임졌지만 이제는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학원도 없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출발선에 선 아이들을 믿음 안에서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공교육의 아쉬운 점은 좋은 답안지를 골라내는 입시 위주 교육”이라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제품’으로 만드는 세상 보다 기독교 교육이라는 가치 아래 아픈 손가락도 같이 손 잡고 아이들의 마음을 되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7세부터 17세까지 10여명으로 구성된 학교 아이들은 원어민의 영어특성화교육을 비롯해 독서·체육·악기연습·자기주도적 학습·영성 교육 등을 통해 자라난다. 자연도 아이들에게 스며든다. 김 목사는 “친구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끈끈한 연대 의식은 도시 아이들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학생들은 존중과 경청의 자세를 배우고 서로를 돌본다. 선생님들도 늘 그들을 기다려준다.
철원 동막감리교회 목사를 역임한 김 목사는 2008년 동홍천교회 부임 후 11명의 목회자 부부와 신학생을 배출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 학생들이 목사가 되기보다는 홍천에서 터전을 잡고 고향 교회를 지키길 원한다. 부임 초기 출석 성도는 180여명이었지만 현재는 3분의 1 가량인 60명으로 줄었다.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의 급격한 이탈이 원인이었다. 김 목사도 더 큰 곳으로 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대안학교를 시작하며 한 순간에 접었다. 김 목사는 “어려울 때 나를 지켜줬던 성도들을 잊지 못한다. 여기서 꽃 피우고 열매 맺기까지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 식당 ‘포터스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청년들 외지 청년들도 주말이면 고향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가진다. 특히 교회 청년들은 주소를 화촌면으로 옮기고 홍천군청년창업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식당 ‘포터스 하우스(토기장이의 집)’를 운영중이다. 지난해 1호점을 창업했고 올해 9월 2호점을 열었다. 수제 햄버거, 돈까스, 덮밥, 죽, 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며 지역 맛집으로도 새롭게 자리잡았다. 청년들을 세우 위한 김 목사의 아이디어였다. 김 목사 또한 식당 영업에 솔선수범이다. ‘밥과 복음이 같이 가야한다’는 마음가짐이다.
김 목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자체적인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교회로서의 기능 뿐만 아니라 말씀, 교육, 경제를 축으로 공동체를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점차 고령화되는 한국교회 전체의 화두이기도 하다.
▲ ‘포터스하우스’에서 판매하는 햄버거 세트. 교회 공동체 활성화는 지역 청년들에게도 새 희망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김화경(29) 씨는 “20대 초반에는 도시를 동경했지만 서울에서 살다보니 가치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다”며 “단조로운 삶이 내게 맞았고 고향 홍천에서 마음이 단단해져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성탄을 맞아 김 목사가 강원도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구약성서 이사야 41장 10절에 새겨진 글귀 중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를 꼽았다. 힘든 시절 이 말씀을 붙들고 어려움을 이겼다. 그의 신조는 ‘양보다 배부른 목자는 되지 않겠다’이다. 올해 성탄절에도 지역 지구대와 소방서에 수제 햄버거를 전달하고 격려할 예정이다. 김 목사는 도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성탄 메시지를 남겼다.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아이들에게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하죠. 흔들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겠지만 겸손과 행복으로 보낸 오늘, 내일 더 좋은 일이 생긴다고 소리쳤으면 좋겠습니다. 구석진 마을까지도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고 생기 돋는 마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젊은이들이 돌아와 살고 싶은 행복한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진형